반쯤 친밀하고, 반쯤 공개적인 - 엽서를 사용한 미술
반쯤 친밀하고, 반쯤 공개적인
엽서는 반쯤은 친밀하고, 반쯤은 공개적인 매체입니다. 이 이중성은 엽서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엽서의 한쪽 면에는 이미지가, 다른 한쪽 면에는 메세지와 주소가 적히죠. 가장 사적인 영역일 수 있는 메세지는 우편으로 배송되는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노출됩니다.
지금 우리는 메신저나 이메일로 시시각각 대화를 나누는 시대에, 그렇기에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모순적인 엽서라는 전달 형식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림엽서로 보는 근대조선』에서 작가 우라카와 가즈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림엽서는 엽서의 특성상 내용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내용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누설의 미디어’로, 그 때문에 쓸 수 있는 내용도 무난한 것으로 국한된다. 바꾸어 말하면 ‘불완전한 서신’인 셈이다.”
이러한 ‘불완전한 서신’의 특성은 오히려 엽서를 하나의 매스미디어로 만듭니다. 메세지를 완벽하게 숨길 수 없기에, 엽서는 결과적으로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전달 매체가 되죠. 이런 형식과 성격은 많은 미술가들에게 매혹적인 요소가 되었고, 엽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앨스워스 캘리(Ellsworth Kelly)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가 앨스워스 캘리(Ellsworth Kelly)는 대표적인 엽서 활용 작가입니다. 그는 유명 관광지 엽서를 콜라주 형식으로 낯설게 만들고, 이를 지인들에게 그림엽서로 보냈습니다.
엽서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내가 여기 있어'라는 존재의 신호로 기능합니다. 캘리는 우편을 배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엽서를 몰래 가져갈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정도로, 엽서에 애정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당시에는 그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여기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엽서에는 분명 캘리 특유의 색감과 형태,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무심한 듯 보냈지만, 결과적으로 엽서 하나하나가 그의 작업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 셈입니다.
온 카와라(On Kawara)
'나는 여기 있다'라는 메시지를 엽서를 통해 전달한 또 다른 작가로는 일본 출신의 개념미술가 온 카와라(On Kawara)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온 카와라는 1968년부터 1979년까지 매일 두 장의 엽서를 전 세계의 지인, 가족, 컬렉터 등에게 보냈습니다. 이 시리즈는 'I Got Up'으로 불리며, 엽서에는 그날 일어난 시간, 날짜, 수신인 주소, 도시 소인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우편 작업이 아니라, 작가가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실존의 기록이었습니다. 온 카와라는 엽서의 ‘서신’으로서의 기능을 개념적으로 가장 정교하게 활용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이중섭
우리나라의 화가 이중섭 역시 엽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엽서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적어 보냈습니다.
특히 제주와 통영 등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낼 때 그린 은지화(銀紙畵) 엽서들은, 그의 사랑과 애절함이 고스란히 담긴 예술 작품이자, 동시에 하나의 편지였습니다. 엽서는 그에게 있어 가장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엽서는 메시지와 이미지를 함께 담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포맷입니다. 반쯤은 친밀하고, 반쯤은 공개적인 이 작은 종이 한 장은, 미술가들에게는 일상의 매체이자 실험의 장이었고, 때로는 존재를 증명하는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엽서는 더 이상 주고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남겨진 느린 미디어지만, 그 속도와 불완전함이 주는 감정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그 틈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마음이나, 혹은 한 시대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